해시태그
잔 건 아니고 스킨십만 했대요
해시태그

Q: 애인은 항상 휴대폰을 엎어두는데요. 한날은 카페에서 각자 할 일 하고 놀다가 애인이 화장실 간 사이 휴대폰을 봤어요. 휴대폰 액정에는 카톡 메시지가 와 있었는데요. 대학원 동기로 추정되는 B가 집에서 에어팟 못 봤냐고 묻는 내용이었습니다. 에어팟...? 

애인에게 물었더니 같이 공부하다가 시간이 너무 늦어져서 재웠을 뿐이라고 해명했어요.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아 잔 거 아니냐고 캐물었더니 ‘잔 건 아니고 스킨십만 있었다’고 얼버무립니다. 이젠 묻기도 무섭습니다. 스킨십만 했다니…… 어디까지 믿어야 하죠?
- 야근도 힘든데 애인까지 버거워진 27살 B

A: ‘재웠을 뿐 자진 않았다’니, ‘술은 마셨으나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의 뉴버전일까요? B님이 생각하는 ‘잤다’의 정의가 무엇인가요. 설마, 삽입만 안 했으면 괜찮은 건가요.



세상은 넓고 사람은 다양합니다. 머릿수만큼 관계를 맺는 방식도 다채롭습니다. 이해심 넓은 사람으로 살고 싶지만, 때로는 많이 양보해도 이해불가한 영역도 생기죠. 사실, 이해하고 싶지 않은 영역도 있습니다. 술과 밤이 있으면 친구는 없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성애자가 아닌 이상 술과 밤은 섹슈얼한 관계를 맺는 촉매로 통용됩니다.

그러나 막상 커뮤니티 속 사연이 내 이야기가 되면 객관성을 잃습니다. 기존에 고수했던 생각을 철회하기까지 하죠. ‘술과 밤이 있어도 친구가 될 수 있지’ 하면서요. 대개 배경에는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 반, 연인에 대한 신뢰를 지키고 싶은 마음 반이 있습니다. 압니다, 압니다만……

어차피 친구의 연애가 상식적이지 못할 때, 도시락 싸 들고 그만 만나라고 말리는 친구는 뭘해도 욕먹는 존재입니다. 본인이 듣지 않으면 실효성도 없죠. 오늘은 제가 그 역할을 자처하려고 합니다.

image.png

B님이 생각하는 ‘잤다’는 무엇인가요? 어떤 사안을 두고 논쟁하려면 용어의 정의(definition)부터 통일해야 합니다. B님이 애인에게 따져 묻고 있는 ‘자다’는 ‘have a sex(섹스하다)’일 테고, 애인이 말하는 '자다'는 베개에 머리를 누이고 이불에 몸을 묻는 ‘sleep(자다)’입니다.

잠깐 돌아볼까요. 우린 섹스에 대해 말하거나 물을 때 흔히 ‘잤다’라고 표현합니다. 섹스와 잠은 거의 동음이의어죠. 그도 그럴 것이 섹스 뒤에는 프로락틴 호르몬이 나오는데, 이 호르몬이 숙면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거든요.

일단 섹스는 수많은 단계를 거쳐 이뤄집니다. 사실 섹스는 꽤 번거로운 일입니다. 야외 섹스가 아닌 이상 최소한의 가림막이 있는 실내 공간을 확보해야 합니다. 또한 껴 입었던 옷도 벗어 제끼고, 샤워도 해야 합니다.

심지어 섹스다운 섹스에는 흥분의 클라이맥스를 위한 애무도 동반됩니다. 이런 복잡한 단계를 고려할 때, B님의 애인이 <섹스는 없었지만 스킨십은 했다>고 말하는 까닭은 이해가 갑니다. 삽입 섹스는 안 했을지도 모르죠.

흔히 ‘손만 잡고 잤다’라는 표현에 우리는 실소합니다. 그만한 이유가 있거든요. 영국 옥스퍼드대는 핀란드 알토대와 함께 ‘사람간 친밀도와 신체접촉’을 주제로 영국, 핀란드, 프랑스, 이탈리아, 러시아 5개국 남녀 1300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연인부터 낯선 사람 등 각기 다른 관계에서 허용 가능한 스킨십을 물었죠.

그 결과 파트너를 제외하고는 친구부터 터치 가능한 영역이 급격히 줄었습니다. 비교적 남성보다 스킨십에 관대한 여성도 손과 팔, 넓게는 어깨 외에는 허락하지 않았죠. 극단적으로 해석하면, 세상에는 <손만 잡거나, 다 허락하는 관계>, 둘뿐입니다. 유럽이 이 정도입니다......

image.png

관대하게 봐도 친구와 직장동료 사이쯤으로 분류되는 연구실 동료에게 터치를 허락하는 부위는 팔과 어깨쯤이 될 겁니다. B님을 위해 애인과 동기의 스킨십을 '손 잡기'로 가정해 봅시다.

문자 그대로 <손만 잡고 잤다고>요. 여긴 법정이 아니고, 게다가 사랑하면 답도 없습니다. B님의 판단에 맡길 뿐입니다. 하지만, 서 있으면 몰라도 누워서 손 잡기라. 훨씬 무방비 해보이는 건 사실입니다.

애인과 동침한 동기는 목숨 같은 에어팟을 두고 갔습니다. 값비싼 전자기기(...)를 놓고 가면서까지 무엇이 그렇게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 친구라면, '손만 잡고 누워잤다'는 가능성에 배팅하라고 말하진 않을 거예요.😥



[섹문섹답] 코너 💋
별처럼 무수히 존재하는 섹스에 대한 고민. 그중에서도 유난히 번뇌로 들끓는 사연에 답장합니다. 바쁜 분들을 위해! 세줄요약도 첨부할게요. 남들에게 털어놓지 못한 고민, 언제든 환영이에요.😘


1083

WORLD SHIPPING

PLEASE SELECT THE DESTINATION COUNTRY AND LANGUAGE :

GO
닫기